내일이 우수(雨水)다. 비 우(비), 물 수(水). 이름부터가 움직임이다. 우리나라 스물네 절기 가운데 두 번째 절기. 입춘이 첫 문을 열었다면, 우수는 그 문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때라고 해야 한다. 겨우내 내렸던 그 눈이 녹아 비가 되고, 얼음이 풀려 강으로 돌아가는 시간. 달력은 아직 2월이지만 계절의 톱니는 이미 다음 칸으로 넘어가 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기우는 자리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겨울밤보다 한결 높아진 달빛 아래, 새싹을 받아들일 푸름의 기색 또한 완연하다.
최근 바라보았던 남한강도 변했다. 꽁꽁 얼어붙어 숨을 죽였던 강은 어느새 제 소리를 되찾았다.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물살은 다시 햇빛을 받아 윤슬을 마음껏 뽐내며 반짝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세먼지는 극성이다. 하늘은 뿌옇지만 그 공기 속에서 묘한 온기가 감돈다. 한겨울의 먼지가 매섭고 날카로웠다면, 요즘의 공기는 어딘가 느슨하다. 추위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차가움 속에 물기가 섞여 있다. 계절이 방향을 틀고 있다는 신호인게다.
설날 오전 일찌감치 성묘를 다녀왔다. 산소에 쌓인 가랑잎을 헤치자 낙엽 아래서 파란 새싹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겨울의 잔해 아래서 이미 봄은 준비를 끝낸 듯했다. 개울가의 버들강아지는 그동안 감싸고 있던 껍질을 밀어내며 솟아오르고, 복수초 꽃망울은 흙을 비집고 얼굴을 내민다. 복수초는 ‘복을 부르는 꽃’이라 하지 않던가. 노란 빛은 아직 작지만 분명하다.
며칠 전에는 지인이 들판에서 냉이와 달래를 캤다며 SNS에 사진을 올렸다. 흙 묻은 손과 바구니 속 초록빛이 유난히 선명했다. 향긋한 냉이 향을 맡는 듯 느껴졌다. 봄은 꽃보다 먼저 밥상에 오른다. 냉이국의 쌉싸래한 향, 달래장의 알싸함, 어린 쑥의 풋내. 겨울 동안 둔해진 입맛을 깨우는 맛이다. 우수는 그렇게 강에서, 산소에서, 그리고 식탁에서 동시에 시작된다.
“우수·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 오래된 속담은 과장이 아니다. 아무리 단단히 얼어붙은 강도 때가 되면 풀린다는 뜻이다. 조상들은 이 절기를 기다렸다. 농서에는 우수 이후 씨앗을 고르고 밭을 점검하라 적혀 있다. 물이 돌아야 농사가 시작된다. 절기는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삶의 시계였고, 생존의 기준이었다.
우수는 화려하지 않다. 꽃이 만개하지도 않고, 환한 색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다만 녹는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얼음은 끝까지 버티다 결국 물이 된다. 굳어 있던 생각도, 얼어붙은 마음도 그러하리라. 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물이 되고, 겨울은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간다.
그리고 우수의 물이 흐르고 나면, 보름 남짓 뒤(3월5일) 흙 아래 잠들었던 것들이 몸을 튼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이다. 봄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문을 열고 그 문을 따라 물이 먼저 흐르고, 흙이 먼저 숨 쉬고, 그 다음에야 꽃이 핀다. 스물네 절기의 두 번째 문을 지나,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얼음이 사라진 자리에서, 새싹이 올라온 틈에서, 그리고 한 그릇 냉이국의 향속에서 말이다. 저기 저기서 오는 봄을 맞이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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