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27)] 주유소

이종훈 기자
이종훈 국장
이종훈 국장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한때 주유소는 동네의 큰 얼굴이었다. 국도변에 자리 잡은 주유소 하나만 있어도 그곳의 온도가 달라졌다. 밤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고, 늘 차가 들고 났다.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주유소를 운영하는 사람은 소위 지역의 유지로 불렸다. 현금 흐름이 좋았고, 땅을 가진 채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유소는 단순한 장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기반이자 한 동네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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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풍경은 서서히 바뀌었다. 임대해 운영하는 주유소가 늘었고, 경쟁은 거세졌다. 기름값은 오르내렸지만 남는 몫은 점점 줄어들었다. 주유소는 ‘잘되는 자리’에서 ‘버텨야 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무렵, 길 위에 기름을 먹지 않는 차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게 말이다.

2025년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 등록된 차량은 2640만8000대다. 이 가운데 휘발유 차량은 1242만 대, 경유 차량은 885만2000대, LPG 차량은 184만9000대다. 반면 하이브리드·전기·수소차를 아우르는 친환경차는 누적 310만6000대에 이른다. 전기차만 놓고 보면 아직 전체의 2.9% 수준에 불과하지만, 기름을 적게 먹는 친환경차 전체로 보면 이미 적지 않은 규모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흐름이다. 친환경차는 늘고, 내연기관차는 줄고 있다. 이 방향은 다시 거꾸로 돌아가기 어렵다. 정부에선 이미 보조금까지 주고 전기차를 독려하고 있는지 한참 됐다.

이 변화는 주유소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수익은 줄었고, 가격 경쟁은 한계에 다다랐다. 문제는 장사가 안 되느냐가 아니라, 나갈 수 있느냐였다. 주유소를 접으려면 토양을 정화하고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적지 않게는 1억5000만원이 든다. 장사가 안 돼 문을 닫고 싶어도, 문을 닫을 돈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주유소는 폐업 대신 방치라는 상태에 머문다. 문을 닫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그저 버티듯 운영을 이어가는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선택이라기보다, 밀려난 결과에 가깝다.

도심 외곽과 지방으로 갈수록 이런 주유소 풍경은 더 가혹해진다. 경기가 안 좋으니, 땅값은 낮고 거래는 끊겼다. 정화 비용보다 부지 가치가 낮아지는 순간, 자산은 짐이 된다. 팔리지 않는 땅 위에 남겨진 콘크리트 구조물, 녹슨 탱크, 낙서와 쓰레기. 한때 지역의 중심이던 공간은 그렇게 사회의 뒷면으로 밀려난다.

방치된 주유소는 단순한 흉물이 아니다. 노후 시설은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사람이 떠난 공간은 위험해진다. 정리되지 못한 자리는 결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빚으로 남을 것이다. 떠나지 못한 공간이 늘어날수록, 그 비용은 조용히 계속해서 쌓인다. 주유소는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라질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는 시작할 자유는 허락했지만, 정리할 권리는 주지 않았다. 시대는 앞으로 가는데, 떠나는 사람에게는 계산서만 남긴다. 주유소는 지금, 그 계산서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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