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두물머리] 생활 속에서 되새기는 ‘삼세번’, 배려의 표현

오기춘 기자
오기춘 기자
오기춘 국장

우리는 일상에서 “삼세번”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이 말은 단순히 세 번을 뜻하는 관용구가 아니다. 오랜 시간 삶 속에서 다듬어진 한국적 사고와 공동체의 배려가 스며든 기준이자 약속이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고, 다시 설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는 마음의 태도가 바로 삼세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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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번’의 뿌리는 동아시아 또는 사상 전반에 자리한 숫자 ‘삼’의 상징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하늘과 땅, 사람을 아우르는 삼재(三才)의 우주질서 개념처럼, 셋은 완성과 균형을 뜻해 왔다. 그리고 음과 양에서 얻는 기의 조화, 헤겔의 정·반·합의 사고 역시 세 번째 단계에서 비로소 판단과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 인식 속에서 세 번째는 우연이 아니라 숙고 끝에 내리는 책임 있는 결정의 순간이다.

유교적 질서가 사회를 이끌던 시대, 사람을 대하는 기준은 조심스러웠다. 한 번은 실수로 보고, 두 번은 경계로 삼되,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태도와 진심을 가늠했다. 삼세번은 무한한 관용이 아니라, 충분한 기회를 준 뒤 책임을 분명히 하는 배려의 질서였다. 그 배려는 방임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건네는 “삼고초려”와 같은 신중함이었다. 한국적 민속과 생활문화 속에서도 삼세번의 정신은 이어졌다. 아이들 놀이에서 ‘세 판’으로 승부를 정하고, 마을의 중요한 사안을 세 차례 논의하던 관행은 감정이나 즉흥을 경계하는 공동체의 지혜였다. 시간을 두고 듣고, 말하고, 다시 생각한 뒤 결론에 이르려는 태도는 서로를 배려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삼세번은 관용과 엄정함의 균형점이다. 한 번의 실패를 품어 주되, 같은 잘못의 반복 앞에서는 모두가 납득할 기준을 세운다. 경고와 기회를 단계적으로 부여하는 이 방식은 사회의 신뢰를 지키는 장치였고,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배려의 기술이었다. 오늘날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결론이 요구되는 시대에도 삼세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말은 “다시 한번 생각하자”는 제안이며, “사람을 단정하지 말자”는 요청이다. 동시에 반복 앞에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자는 약속이기도 하다. 삼세번은 ‘세 번이면 된다’는 낙관이 아니라, ‘세 번째에는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엄중한 배려다. 삼세번은 시간을 통해 신뢰를 만들고, 기회를 통해 성찰을 돕는 말이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이 표현에는 상대를 헤아리는 관용과 공동체를 지키는 책임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삼세번”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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