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로텐더홀이 ‘정치극장’이 됐다.
중앙엔 단식자가 조명 아래 앉아 있고, 양쪽에선 서로의 구호가 상대를 향해 날아든다. “정치쇼”라는 낙인과 “법치·정의”라는 외침이 충돌하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 가장 희미해진 단어는 ‘특검’이다.
특검은 본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칼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선 칼이 아니라 소품처럼 쓰인다. 누가 회피하는지, 누가 판을 깼는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지—정치의 관심은 ‘진상 규명’이 아니라 ‘프레임 승부’에 꽂혀 있다.
단식은 결단이 아니라 메시지로 소비되고, 메시지는 곧바로 상대를 때리는 몽둥이로 변한다.
그 사이 특검의 핵심 질문은 무대 뒤로 밀린다.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밝힐 것인가. 통일교 의혹을 좁게 볼지, 정교유착 전반으로 넓힐지, 수사·특검의 연결고리는 어떻게 설계할지—이런 내용은 사라지고, 남는 건 “쇼냐, 절규냐”라는 감정싸움뿐이다.
정치가 ‘진실’ 대신 ‘연출’을 고르는 순간, 특검은 도구가 아니라 명분이 된다.
관객석의 국민은 조용하다. 웃지도 않고 박수도 치지 않는다. 정치가 무대 위에서 서로를 규정하는 동안, 신뢰는 무대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 만평은 묻는다.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진실을 향한 경쟁이라면, 왜 특검의 내용은 비어 있는가. 특검을 소품처럼 흔드는 정치가 계속된다면, 남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피로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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