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르포] 강추위 속 과천 렛츠런파크… 말은 2분을 달리고, 사람은 하루를 건다

김광섭 기자
“에이…” 하고 나가도, 또 들어온다
강추위가 이어지던 토요일인 27일 정오 무렵. 경마를 위해 과천 렛츠런파크를 찾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광판에 한 경기 베팅 금액이 무려 21억7천만원을 가리킨다. (사진=김상현 기자)
강추위가 이어지던 토요일인 27일 정오 무렵. 경마를 위해 과천 렛츠런파크를 찾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광판에 한 경기 베팅 금액이 무려 21억7천만원을 가리킨다. (사진=김광섭 기자)

[중앙신문=김광섭 기자] 강추위가 이어지던 토요일인 27일 정오 무렵. 과천 렛츠런파크 입구는 이른 시간부터 붐볐다. 정문을 지나 출입구 양쪽에는 경마 전문지를 파는 판매소가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이용객들은 입장하자마자 그 앞에 멈춰 섰다. 말이 뛰기 전, 사람들은 이미 정보를 사고 있었다.

입장 전 주차장은 거의 꽉 찬 상태였다. 주차요금은 6000원. 잠시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후 알게 된 사실은 3시간 이내 출차하면 3000원이 반환된다는 점이었다.

주차장 위치에 따라 한참을 걸어야 출입구가 나온다. 지상 6층 규모의 건물 안 실내 관중석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고민 섞인 웅성거림이 느껴졌다. 실외 관중석에서는 찬바람에 몸을 웅크린 사람들 사이로 또 다른 웅성거림이 번졌다. 아직 출발 신호는 울리지 않았지만, 경기장은 이미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정보지를 사고, 자리를 잡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

벤치 위에 놓인 김밥을 장갑 낀 채 먹는 사람,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들의 오늘 희망은 “제발 오늘만큼은”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간간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혼자 온 중년 남성과 어르신들이었다. 간혹 딸과 함께 온 아버지도 있었고, 이곳에 오래 다닌 듯 서로 얼굴을 아는 중년 남성들은 오늘 경기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사람들의 표정은 이미 오늘 경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일 구매 상한선 10만 원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은 꾸준히 반복돼 흘러나왔다.

그러나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그 말의 무게를 무색하게 했다. 한 경기마다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돈이 베팅됐다. 숫자는 거대했지만, 마권을 쥔 사람들의 손은 늘 고민 속에서 조심스러워 보였다.

경기 정보가 빼곡한 책자를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열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권 구매표에 검정색 사인펜으로 표시를 하고, 계산을 하고, 다시 지우는 동작이 반복됐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직원들이 나와 주변을 정리했고, 관중석은 다시 말끔해졌다. 이곳에서는 감정보다 질서가 먼저였다.

경기 사이사이, 편의점은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이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편의점 여주인의 인사에 손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기자가 “손님들을 아시나 봐요?”라고 묻자, 주인은 짧게 웃으며 말했다. “알지요. 자주 오시는 단골분들이에요.”

이곳을 찾는 얼굴들은 낯설지 않았다. 경마장은 늘 붐비지만, 그 안에는 반복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 보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한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다만 겨울보다는 봄·여름·가을에 관람객이 훨씬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다시 관중석을 바라보니, 이 추위 속 풍경이 오히려 더 선명해 보였다.

광명시청_메인중앙하단_260824
안성시청_바우덕이축제_메인 하단_260908
제주 경기가 시작되기전 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김광섭 기자)
제주 경기가 시작되기전 경기를 기다리는 마권 구매자들. (사진=김광섭 기자)

'결과따라 터진 탄식과 욕설'
들어오는 사람, 나가는 사람

이날 네 번째 경주에서는 말에서 기수가 떨어지는 사고가 났다. 큰 부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관중석에서는 탄식과 욕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걱정과 분노, 손해에 대한 아쉬움이 한데 섞인 소리였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누군가는 기수를 걱정했고, 누군가는 결과표만 노려봤다. 자신이 베팅한 결과가 문제가 된 듯한 표정이었다.

경마는 과천과 제주 경기가 번갈아 주말 기준 하루 17차례 열린다. 현장에서 치러지는 경기에 더 많은 돈이 몰렸다. 한 어르신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다 열린다”며 “주말이 본경기”라고 말했다. 경마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하는 말투에는 이곳에 익숙한 사람의 생활 리듬이 묻어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대형 트랙터 3대가 나와 트랙을 고르게 다진다. 말이 남긴 흔적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나 관중의 얼굴에 남은 표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던 한 어르신은 “내 책자 누가 가져갔다”며 한참을 투덜댔다. “경마 책자까지 훔쳐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에는 분노보다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여주기 위해 나들이 삼아 찾은 듯했다. 그러나 기자의 시선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곳곳에 마련된 흡연실에서 새어 나오는 담배 연기가 공기를 타고 번졌다. 실내 공간임에도 담배 연기가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시설 관리와 개선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었다.

오후 1시 50분께, “에이…”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보였다. 분명 오늘의 목표에 닿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얼굴은 숨기기 어려워 보였다. 어떤 이는 편의점 호빵으로, 어떤 이는 우유와 빵으로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27일 오후 2시30분께 과천 렛츠런파크를 찾는 사람들. (사진=김광섭 기자)
27일 오후 2시30분께 과천 렛츠런파크를 찾는 사람들. (사진=김광섭 기자)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오후 2시 30분께에도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구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한편에서는 이미 결과를 받아들인 듯 조용히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이제 시작인 하루였고, 누군가에게는 이미 끝난 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금·토·일 가운데 일요일이 가장 붐빈다고 한다. 이날 기자의 눈에 비친 실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족히 1만 명은 돼 보였다.

말은 결승선을 통과하면 멈춘다. 그러나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경마가 열리는 날은 늘 이렇게 엇갈린다. 누군가는 나가고, 누군가는 다시 들어온다. 그게 경마였다.

#경마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돈을 거나

경마는 한 경주에 출전하는 여러 말 가운데 도착 순위를 맞히는 경기다. 관람객은 입장 후 현장에 비치된 마권 구매표를 작성해 베팅에 참여한다. 마권은 창구나 자율 발매기를 통해 살 수 있으며, 최소 금액은 1000원이다. 베팅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단순한 것은 단승식으로, 1등 말 한 마리를 맞히는 방식이다. 복승식은 1·2등 말을 순서와 관계없이 맞히는 방식이고, 삼복승식은 1·2·3등 말을 모두 맞혀야 한다. 이 밖에도 순서까지 정확히 맞혀야 하는 방식 등 난도가 높은 베팅도 있다.

마권은 경기 시작 직전까지만 구매할 수 있다. 발매가 마감되면 안내방송이 나오고, 이후에는 더 이상 베팅이 불가능하다. 경주가 시작되면 관중석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가, 결승선을 앞두고 다시 소음으로 가득 찬다.

경주는 보통 1000m에서 1200m, 빠르면 1분 20초, 길어도 2분 남짓이면 끝난다. 그러나 순위가 애매할 경우 비디오 판독이 이어지며, 최종 순위가 확정될 때까지 마권을 버려서는 안 된다.

배당금은 맞힌 사람들끼리 베팅 금액을 나눠 갖는 구조다. 맞힌 사람이 적을수록 배당은 커지고, 많이 맞히면 배당은 낮아진다. 이 때문에 한 경주에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의 돈이 모이지만, 결과는 단 몇 초 만에 갈린다.

수원특례시의회_08 (265x118)
260623_인천도시공사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0개의 댓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