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19)] 계(契)

이종훈 기자
이종훈 국장
이종훈 국장

계(契). 한자로는 ‘맺을 계’ 자다. 사람과 사람이 약속으로 묶인다는 뜻이다. 은행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시절, 돈은 통장보다 얼굴에 기대어 움직였다. 월급날이 일정하지 않고, 장사가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던 때에 계는 하나의 튼튼한 안전망이었다. 급할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그나마 덜 아픈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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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의 지혜는 계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품앗이가 있었고, 두레가 있었고, 울력이 있었고, 향약과 부조가 있었다. 혼자서는 버티기 어려운 삶을 사람으로 메워온 방식들이다. 오늘 내가 도와주고, 내일 네가 도와주는 그저 단순한 약속이었지만, 그 약속은 꽤 단단했다. 계약서는 없었고, 대신 관계가 있었다.

품앗이는 가장 기본적인 사적인 교환이었다. 일손이 부족할 때 논에 모를 심어주고, 집에 일이 있으면 몸을 보탰다. 계산은 없었고, 기억만 남았다. 두레는 마을 단위의 협업이었다. 농번기에는 함께 일했고, 일이 끝나면 술을 나눴다. 울력은 공동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다. 길을 고치고 둑을 쌓으며, 마을은 스스로를 지탱했다. 향약은 서로를 지켜보는 규범이었고, 부조는 인생의 큰일 앞에서 등을 내주는 방식이었다. 봉투보다 얼굴이 먼저였던 시절이다.

지금도 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여행을 가자는 약속으로 소액을 모으는 여행계를 하고 있다. 한 달에 10만원씩, 여섯 명이 웃으며 돈을 낸다. 누가 먼저 가져가는 일도 없고, 누군가가 돈을 굴리지도 않는다. 이건 금융이 아니라 목적이 분명한 공동 저축이다. 사고가 날 이유도 크지 않다. 주변에서도 이른바 생일을 챙겨주는 생일계,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는 먹자계,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공연계 등이 재미있게 굴러가고 있다.

문제는 계가 은행의 역할을 흉내 내기 시작할 때다. 목돈이 오가고, 누군가가 큰돈을 쥐고, 이자와 순번이 얽히는 순간 계는 더 이상 풍습이 아니다. 최근 서울 송파 가락시장 상인들이 참여한 계에서 계주가 곗돈 15억을 들고 잠적했다고 한다. 수백만원에서 1억원까지 피해를 본 상인들도 100여명이 이른다는데, 이런 소식들은 잊을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친목회, 직장 모임 등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에서도 피해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사고 뒤에 남는 말은 늘 비슷하다. “설마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고.

이전 사건에서 사고 직전 계주가 보냈다는 짧은 문자 하나가 떠오른다. “정리되는 대로 연락하겠다” 날짜도, 금액도, 약속도 없는 문장이다. 사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을 벌겠다는 말이다. 그다음에 오는 건 대부분 침묵이다. 그때부터 계는 추억이 아니라 사건이 된다.

쓸쓸한 건 돈 때문이 아니다. 계 역시 살기 어려웠던 시절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품앗이와 두레, 울력과 부조가 그러했듯, 계도 사람을 믿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규모는 커졌고, 욕심은 세분화됐다. 관계로 감당하던 신뢰를 이제는 버거운 숫자가 대신한다. 그 틈에서 계는 자주 문제를 일으키고, 뉴스가 된다.

풍습은 시대를 대신해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울 때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반복되는 사고로 소환되기 전에, 조용히 보내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계는 이미 충분히 역할을 했다. 사람을 묶던 지혜였다는 사실만 남긴 채, 이제는 시대의 뒤안길로 물러나도 될 것 같다. 계(契). 한자로 ‘맺을 계’. 이제는 멀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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