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동지는 일 년 중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어둠이 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조상님들은 이날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해가 약해지면 그 틈을 타 귀신이 설치고 액운이 집 안으로 스며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동지는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조심해야 할 날이자 대비해야 할 밤이었다. 그 대비가 바로 붉은색의 음식 팥죽이었다.
팥은 붉다. 붉은색은 '불'이고 '피'이며 생명이다. 귀신이 두려워하는 색이라 여겼고, 그래서 동지에는 팥을 쑤어 죽을 만들었다.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 대문과 부엌, 장독대에 팥죽을 조금씩 놓고 집 안 구석구석에 뿌렸다. “여기까지다”라고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의식이었다. 동지팥죽은 음식이라기보다 집을 지키는 수호신이었고, 수호신을 몸속으로 넣으니 얼마나 든든했으리라. 어둠에게 보내는 조용한 선언에 가까웠다.
나에게도 그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동지가 다가오면 어머니는 솥을 걸었다. 가스불이 아니라 장작불이었다. 불길이 솥바닥을 핥고, 팥이 끓어오르며 내는 소리는 겨울 부엌의 음악 같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풍경 속에서 집은 이상하게 더 따뜻해졌다. 그날 먹던 팥죽에는 늘 새알심이 들어 있었다. 쌀가루를 반죽해 손으로 빚은 하얀 알들. 팥죽 속에서 건져 올린 새알심을 씹을 때마다 쫀득거리며 겨울이 조금은 물러서는 느낌이 들었다.
동지팥죽에는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시간을 숫자로 세기 전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한 해를 무사히 건넜다는 확인. 팥죽 한 그릇은 그 확인서 같은 거였다. 그래서 동지는 ‘작은설’이라 불렸다. 새해를 앞두고, 먼저 어둠을 통과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어보니 팥죽 먹을 날이 정확히 여드레 남아 있다.
이맘때가 되면 전통 풍습을 지키는 사찰에서도 팥죽을 끓인다. 묵묵히 장작을 지피고, 말없이 팥을 저어 만든 그 팥죽을 한 그릇 얻어먹는 일. 그것 역시 동지를 건너는 방식이다. 집이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 함께 끓여낸 팥죽을 나누는 순간, 그 자리는 이미 따뜻한 경계가 된다.
요즘은 팥죽이 흔하다. 편의점에서도, 프랜차이즈에서도 쉽게 만난다. 귀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뿌리는 집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동지의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장 어두운 날에 가족이 둘러앉아 팥죽 한 그릇을 나누며 “이런 풍습이 있었지” 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일, 그 자체가 이미 어둠에 맞서는 행위다.
회의적으로 보면 팥죽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액운이 실제로 쫓겨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팥죽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긴 밤에도 불을 켜고, 그 불을 먹으며, 우리는 아직 함께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설탕을 조금 뿌려 달달하게 먹으면 더 좋다. 쓰디쓴 겨울에 단맛을 더하는 일, 그것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방식이다. 동지팥죽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가장 어두운 날을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오래된 인간의 고집 같은 것이어서. 다가오는 이번 동지에는 사람들이 많은 오일장 같은 곳을 찾아 팥죽을 꼭 먹어보자. 다가오는 새해 2026년 병오년(丙午年)도 붉은 말의 해가 아니던가. 이래저래 붉은 색과 친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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