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16)] 미꾸라지

김광섭 기자
22일 낮 12시13분께 여주시 대신면 상교리의 한 논에서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성 4명이 겨울철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미꾸라지를 잡고 있다. (사진=김광섭 기자)
지난해 12월22일 낮 12시13분께 여주시 대신면 상교리의 한 논에서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남성 4명이 겨울철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미꾸라지를 잡고 있다. (사진=중앙신문DB)

겨울 이맘때쯤이면 논두렁에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던 풍경이 지금도 시골 곳곳에 남아 있다. 장화를 신은 발끝으로 촉촉한 논바닥을 더듬어 손가락만 한 미꾸라지가 꿈틀거리며 잡히던 그 느낌. 어린 시절 내가 직접 겪어 본 일이어서인지, 그 미끈한 생명의 움직임이 아직도 손안에서 살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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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생명이 꿈틀대는 순간, 농사일로 굳은 아버지의 몸과 마음도 잠시나마 풀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건져 올린 미꾸라지에 겨울 파와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고춧가루 한 줌을 풀어 한 솥 푹 끓여내던 추어탕은 말 그대로 우리 아버지의 겨울을 견디게 하는 한 그릇의 힘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뚝뚝 끊어 넣어 함께 끓여낸 수제비까지 더하면, 그 따뜻한 국물은 추위와 피로를 단번에 녹여내는 보약이 됐다. 지금도 곳곳의 추어탕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도 이런 겨울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미꾸라지는 예로부터 농부들의 영양식이었다.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이 풍부해 기력 회복에 으뜸이라 했고, 논물에 손이 시리도록 들어가 잡아야 했던 수고도, 동네 사람들이 함께 둘러앉아 먹던 추어탕 한 숟가락에 모두 잊혔다. 흙내와 온기가 뒤섞인 그 맛에는 긴 겨울을 이겨내는 묘한 저력이 있었다. 그래서 미꾸라지는 단순한 겨울 음식이 아니라 오래된 상징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미꾸라지는 우리의 식탁뿐 아니라 말과 비유 속에서도 오래 자리를 지켜왔다.

속담도 그렇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은 작은 존재 하나가 전체를 어지럽힌다는 뜻이고, “미꾸라지 없으면 용궁도 못 간다”는 말은 작고 평범한 존재라도 제 몫이 있다는 의미다. 두 속담 사이에는 공동체와 인간에 대한 오래된 통찰이 담겨 있다. 어느 사회든 소수의 문제와 다수의 선의가 뒤섞여 흐름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사실 아닐까.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기관별 업무보고에서 “대다수는 성실하지만 극소수가 물을 흐린다”고 언급한 것도 이 오래된 비유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최근 공직사회에서 연이어 터진 비위와 기강 해이 속에서 성실한 다수를 보호하고 일탈한 소수를 분리해 보자는 메시지다. 조직에는 언제나 흙탕물을 일으키는 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연못 전체가 더럽혀진 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흙탕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원인을 언제나 미꾸라지에게만 돌릴 일일까. 어쩌면 연못의 물길이나 바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작은 파동에도 쉽게 탁해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물을 맑히는 힘은 언제나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다수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겨울 논두렁에서 건져 올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결국 사람의 기력을 회복시키듯, 소리 없이 책임을 지키는 이들 덕분에 사회는 흐름을 유지한다.

흙탕물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맑은 물은 시간이 걸려야 투명해진다. 우리는 종종 소란스러운 사건과 파문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나라를 떠받치는 힘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일상 속에 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작은 책임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공직자들, 이름 없이 흐름을 만들어내는 다수의 선의. 이들의 성실함이야말로 겨울의 연못을 지키는 진짜 온기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제 몫을 지키는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따뜻한 추어탕 한 그릇을 건넨다. 그들이 지켜내는 성실함이 이 겨울을 버티게 하고, 결국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힘이 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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