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 병오년(丙午年) '미쁘다'

김광섭 기자
11일 오전 들른 음식점의 미니 트리가 오가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사진=김광섭 기자)
11일 오전 들른 음식점의 미니 트리가 오가는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사진=김광섭 기자)

올해도 어느덧 스무 날 남짓이 남았다. 연말은 늘 그렇다. 마음이 괜히 번거롭고, 몸은 사소한 피로에도 민감해진다. 바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나를 바쁘게 만드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선다. 나는 이 한 해를 어떻게 건너왔을까.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놓쳤는가. 누구에게나 그렇듯 연말은 어김없이 이런 질문들을 조용히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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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힘들다 말하면서도 결국 또 하루를 산다. 관계는 더 예민해지고, 욕구는 커지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뉴스만 보아도 마음이 지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줄어드는 시대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깊어지기란 더욱 어렵다. 그래서인지 내년에는 ‘미쁘다’라고 부를 수 있는 인연,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나 곧 알게 된다. 그런 인연은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미쁘다가 되는 것, 그게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다. 미쁘다는 오래된 순우리말이다. 발음이 예쁘다와 닮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미쁘다는 화려함이 아니라, 믿을 만하고 든든한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설명이 없어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존재, 그 단단한 결을 담고 있는 말이다.

오래전 유행한 책 '미움받을 용기'가 지금도 회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관계의 뿌리는 언제나 용기와 믿음에서 시작된다. 미움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진짜 관계가 깊어진다고 말하듯이, 미쁘다 역시 그 반대편에서 조용히 빛난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건네는 일은 어렵고, 믿음받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면 우리는 '미움받을 용기'와 '믿음받을 용기'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돌아본다. 나는 올해 누구에게 미쁘다였을까.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조심스레 거리를 두게 만드는 사람이었을까. 관계는 자주 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말의 온도, 태도의 진심, 작은 약속을 지키는 힘이 쌓여 어느 순간 '저 사람은 미쁘다'라는 확신을 만든다. 그 확신이 어떤 관계든 버티게 하는 뼈대가 된다.

내년에는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기대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요란하지 않아도,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무게를 갖는 것. 그것만으로도 관계는 달라지고 삶은 한층 단단해진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러울 것이고, 뉴스는 또 다른 걱정을 데려오겠지만, 믿음이라는 작은 축적은 결국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새해는 어김없이 올 것이다. 달력은 바뀌지만 마음이 저절로 새로워지는 법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의식적으로 마음의 방향을 고쳐 잡아야 한다. 나는 내년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올해 누구에게 미쁘다였는가. 그리고 내년 병오년(丙午年) 붉은말의 해에는 누구에게 그렇게 될 것인가.” 남은 날들을 차분히 정리하며, 새해에는 조금 더 믿음직하고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에게 미쁘다가 되는 한 해를 다시 맞이할 것이다. 오늘 오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들른 음식점 미니 트리가 “그게 나야 나” 하고 나를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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