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흐린 날이면 문득 김장철 보쌈이 그립다. 돼지고기 삶아 갓 버무린 김치에 올려 먹던 그 한 점. 김장은 늘 추위를 데워주던 풍경이었다. 지금은 김장의 방식도 삶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지만, 김장은 여전히 겨울을 견디는 데 꼭 필요한 우리의 생활 기술이자 마음의 의식이다.
예전엔 김장철이 되면 서울로 시집간 누님들이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김장하러 왔다!” 하며 들어와 김장판을 함께 꾸리고, 배추와 무를 산처럼 쌓아 양념을 버무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갈 때면 김장김치뿐 아니라 늙은 호박, 고춧가루, 참기름 같은 귀한 농산물도 바리바리 챙겨갔다. 떠나기 전에는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용돈을 조용히 쿡 찔러드리곤 했다.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순간 집 안에는 겨울보다 더 따뜻한 온기가 흘렀기 때문이다. 김장은 그렇게 먹을거리와 마음이 함께 오가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형편이 달라져, 바쁜 자식들이 내려오지 못하면 부모가 김장을 해서 택배로 보내는 풍경이 흔하다. 우체국 앞에 쌓인 김장 박스를 보면 김장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결국 누군가를 위해 담그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장의 뿌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한자 의미다. ‘김장’은 침장(沈藏)에서 왔다는 설명이 널리 전해진다. 가라앉힐 침(沈), 갈무리할 장(藏). 말 그대로 푹 담가 오래도록 저장한다는 뜻이다. 옛 문헌 속 김치 역시 ‘침채(沈菜)’, ‘지(漬)’, ‘저(菹)’ 같은 말로 기록됐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 ‘침장고(沈藏庫)’가 있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으니, 김장은 국가적 저장 기술이자 생활 과학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장을 떠올리면 나는 흙 속에 묻어두던 김장 항아리도 생각난다. 겨울에도 땅을 파면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일인데도, 그 과정 자체가 자연을 이용한 가장 과학적인 방식이었다. 김치는 4~5℃에서 가장 맛있게 익는데, 옛사람들은 이 온도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항아리의 흙 냄새, 짚단의 촉감, 겨울바람—all of 그것이 김치를 하나의 생명처럼 지켜냈다. 자연의 힘과 사람의 기술이 완벽하게 만난 방식이었다. 지금은 그 자리를 김치냉장고가 대신한다. 항아리보다 훨씬 정밀하게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거의 모든 가정에 한 대씩 있을 정도로 보편화됐다. 말하자면 김치냉장고는 현대판 침장고이자, 기술로 계승된 우리의 발효 문화다. 저장 방식은 바뀌었으나, 그 안의 마음만큼은 지금도 그대로다.
세계가 김치를 케이푸드의 대표로 인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효의 과학, 겨울을 견디는 지혜, 공동체의 노동과 정서, 그리고 가족을 위한 마음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음식. 그래서 김장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삶을 설명하는 문화가 된다. 얼마 전 담근 올해 김장김치가 곧 제 맛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산미가 익어가는 그 과정을 떠올리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을 저장하고, 무엇을 이어가며, 무엇을 나누는가. 김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기억의 그릇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인의 겨울 한가운데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것이다.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