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 청국장

송석원 기자
송석원 국장대우
송석원 국장

겨울이면 사람 마음은 이상하게 뜨끈한 그 무엇을 찾는다. 뺨을 스치는 찬바람이 서늘해질수록 말이다. 우리는 이런 겨울 자주 뚝배기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청국장을 떠올린다. 신김치가 한 줌 들어가 푹 익어버린 냄새는 코끝을 툭 건드리고, 뚝배기는 생명을 얻은 듯 요란하게 끓기 시작한다. 뚜껑을 여는 순간 흩어지는 그 발효의 향은 한겨울 새벽 난로에 손을 녹일 때처럼 따뜻하다. 혀끝에서 퍼지는 고소함과 구수함은 밥 한 숟갈을 부르고, 평소 한 공기 먹던 사람도 두 공기 비우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청국장은 음식이라기보다 겨울을 견디게 하는 온기의 근원 같은 것이다.

광명시청_메인중앙하단_260824
안성시청_바우덕이축제_메인 하단_260908

이렇게 친근한 청국장이지만, 그 속엔 발효의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한다. 단백질이 풍부해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린 콩을 발효시키면 아미노산이 늘고, 소화는 더 잘되고, 몸에도 이롭다. 발효는 기다림의 기술이고, 기다림은 결국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드는 시간의 맛이다. 그래서 청국장은 더 뛰어난 음식이 된다. 발효가 숙성시키는 건 콩만이 아니라 사람 마음도 함께 익힌다.

이곳저곳을 찾아보니 청국장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몽골군이 말을 타고 다니며 안장 속에서 자연 발효된 콩을 먹은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한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온돌 아랫목이라는 한국의 주거 환경, 짚 속의 자연균, 그리고 콩을 삶아 빠르게 띄우던 장문화가 합쳐져 우리 고유의 발효 방식이 자연스럽게 발전했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청국장의 빠른 발효와 강한 향은 결국 한국 겨울과 생활 속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이름도 흥미롭다. 청국장(淸麴醬)의 ‘청(淸)’은 맑을 청자다. 하지만 그 ‘맑음’은 투명하거나 희다는 뜻이 아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 발효된, 순수하고 정갈한 장이라는 의미다. 냄새가 강해도 속은 맑고 깨끗하다는 옛사람의 관점이 이름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청국장을 먹을 때 우리는 그 구수한 국물만 먹는 게 아니라, 발효가 만들어낸 순수와 기다림까지 함께 떠먹는 셈이다.

사실 청국장의 냄새는 때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아침에 한 그릇 먹고 나가면 옷에 냄새가 스며들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금 민망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청국장은 조금 냄새가 나야 맛있다. 요즘 음식점 중엔 냄새를 없앤 ‘순한 청국장’을 내놓는 곳도 있지만, 그건 청국장에서 가장 중요한 영혼 하나가 빠져버린 맛이다. 발효의 향은 이 음식의 존재이자 정체성이다. 그래서 냄새를 제거하면 남는 건 청국장이 아니라 그저 ‘콩이 들어간 어떤 국’일 뿐이다.

아래층 집에서 청국장을 끓이면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냄새가 코끝을 건드릴 때, 누군가는 얼굴을 찡그렸겠지만, 누군가는—그 냄새에 취해버리곤 한다. 향이 천천히 올라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한국 겨울의 풍경이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저녁의 어스름, 그리고 어딘가 집집마다 퍼지던 청국장의 숨결. 일상의 틈에서 기어 나오는 그 따뜻한 냄새가 우리를 살아 있게 했다.

청국장은 결국 ‘냄새까지 먹는 음식’이다. 향이 기억을 깨우고, 맛이 하루를 위로하며, 발효의 시간이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너그럽게 만든다.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그 한 모금의 온기 속에 겨울이 녹고 삶이 잠시 쉬어간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구수한 그 냄새 하나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또 군침이 돈다. 신김치 들어간 청국장.

수원특례시의회_08 (265x118)
260623_인천도시공사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0개의 댓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