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우나 문이 덜컥 열렸다. 김이 가득한 안쪽으로 할아버지가 작은 손자 아이를 안고 들어선다. 아이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를 따라 난생처음 사우나는 온 듯했다. 할아버지는 연일 손주를 달래지만 울음은 좀처럼 그 치치 않는다. 어른에게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아이에게는 너무 뜨겁고 갑자기 낯선 세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사람은 이렇게 처음 만나는 것 앞에서 놀라고, 울고, 멈칫하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며 자라는구나’하고. 살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란 결국 이런 ‘처음의 순간들’의 연속이 아닐까.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수많은 경험을 지나며 어른이 된다. 너무 큰 가방을 메고 입학식에 서던 날의 어색함, 운동장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질 때의 눈물, 첫 시험지 앞에서 펜을 쥔 손이 떨리던 순간.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말을 걸지 못해 돌아오는 길에 괜히 혼자 속상했던 날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작은 순간들이 지금 각자의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조금 더 자라면 더 큰 문턱들이 찾아온다. 수능 시험장 앞에서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숨을 고르는 일, 입사시험 면접실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수십 번 답변을 연습하던 긴장감, 첫 출근 날 사무실 문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낯섦. 처음 받는 월급으로 부모님 지갑에 몰래 용돈을 넣던 떨림도 있다. 반대로 실수로 혼이 나 화장실에서 마음을 달래던 날도 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을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 더 깊어진다.
남녀가 겪는 길은 저마다 다르기도 하다. 남자는 군대를 앞둔 시기의 막막함을 지나고, 입대해서 만난 호랑이 같았던 선임병들. 잠을 깨워 라면 한 젓가락을 먹이던 그때의 말년병장과의 조우.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이는 시간을 겪는다. 사랑에 빠져 잠을 설치는 날도 있고, 이별의 한 문장에 하루가 무너지는 순간도 있다. 결혼식장 문 앞에서 “이제 내가 한 가정을 이루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는 것도 처음 겪는 깊은 감정이다.
삶은 기쁨만 담긴 그릇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부모님의 주름이 깊어진 것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일, 건강검진에서 낯선 단어 하나에 가슴이 철렁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처음 배우는 일도 있다. 그러나 슬픔 끝에도 다시 웃는 날이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또 다른 경험으로 깨닫는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흐르는 풍경을 보며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결국 사람은 처음을 겪으며 자란다. 처음의 뜨거움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경험을 반복하며 견딜힘이 생긴다. 사우나에서 울던 아이도 조금 지나자 울음을 멈추고 온도에 적응했다. 우리도 그렇다. 매번 새로운 문 앞에서 멈칫하지만, 결국 한 걸음 내딛으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순간을 돌아보며 말하게 된다. “그때 참 두렵긴 했지만, 결국 잘 지나왔구나” 다가오는 붉은말의 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면 그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우리가 모여 좀 더 희망찬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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