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을 이틀 앞둔 오늘, 나는 하얗게 굳은 도로의 흔적을 바라보며 겨울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하나를 떠올린다. 어젯밤 경기 곳곳에는 평균 4cm, 많은 곳은 6cm가량의 눈이 내렸다. 수치만 보면 조용한 겨울밤의 흔한 적설처럼 보이지만, 그 뒤로 이어진 사고와 시민들의 고생을 떠올리면 단순한 풍경이라 하기 어렵다. 눈은 적당하면 마음을 씻어내는 위로가 되지만, 넘치면 일상의 균열을 만드는 짐이 된다. 많은 이들이 말한 것처럼 “눈은 적당히 와야 아름답다”는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이는 날이다.
절기 ‘대설(大雪)’은 말 그대로 큰 눈이 내리는 때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를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겨울의 분기점으로 이해했다. 바람이 땅 아래가지 깊게 내려오고, 땅이 단단히 얼며, 만물이 긴 겨울을 버틸 힘을 비축하는 시기. 그래서 예부터 “대설이면 짐승도 굴을 깊이 판다”는 말이 전해졌다. 자연의 변화가 생명에게 요구하는 태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눈은 차갑지만 그 속엔 살아남기 위한 지혜와 절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도시는 그 지혜와는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적설 몇 ㎝만으로도 도로는 미끄러지고 차량은 통제되며, 누군가의 하루가 송두리째 흔들린다. 어젯밤도 그랬다. 사람들은 눈의 낭만보다 귀가길 안전을 먼저 떠올렸고, 예쁜 풍경보다 사고 소식이 더 빨리 전해졌다. 예전처럼 ‘눈이 와서 기분이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자연의 선물이 어느새 위험의 신호로 바뀐 현실은 우리가 사는 도시 구조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은 여전히 상징을 남긴다. 오늘 오전 가본 설봉호수는 설봉산을 배경으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눈이 많은 해엔 풍년이 들거라 믿던 옛사람들의 기대, “눈이 내려야 겨울답다”던 속담, 흰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던 조상들의 겨울 풍경. 이 모든 기억이 지금 우리의 감각 속에도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오래된 말뜻을 떠올린다. “눈은 많이 와도 마음만은 흔들리지 말라.” 계절을 이기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태도라는 뜻일 것이다.
대설을 앞둔 오늘, 나는 다시 묻는다. 눈은 왜 늘 이런 생각을 남길까. 아마도 눈은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히 오면 위로가 되고, 지나치면 상처가 되며, 어느 순간에는 희망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세상 일도 다르지 않다. 지나치면 균열을 만들고, 적당함 속에서 길이 열린다. 그래서일까. 어젯밤 하얀 눈을 보며 나는 문득 ‘절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대설을 앞둔 이 겨울, 부디 눈도 삶도 적당하기를. 피해는 없고, 마음에만 얇은 흰빛이 남기를.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딱 사람의 온기를 지켜낼 만큼의 겨울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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