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 연말 트리

김종대 기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연말연시의 공기는 묘하다. 바람은 한층 차가워졌는데 거리는 오히려 따뜻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반가운 얼굴 때문이겠다. 바로 지자체가 설치한 ‘연말 트리’다. 누군가는 크리스마스트리라 부르지만, 행정의 손에서 만들어진 그것은 종교적 기원을 벗고 도시의 겨울을 밝혀주는 공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나무 모양의 구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감은 꽤나 묘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올해 역시 자주 들르는 편의점에서도, 상점에도, 카페에도 트리가 풍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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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의 유래를 더듬어 올라가면 본래의 이름인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태동한 상징물이지만, 오늘날 한국의 도심에서는 종교적 의미보다 ‘희망’(希望)이라는 한자 어원적 감정을 품은 장식물로 받아들여진다. 뿌리는 같지만 쓰임은 달라진 셈이다. 지자체가 설치하는 연말 트리는 바로 그 변화된 의미의 산물이다. 공공 공간에 놓인 만큼, 특정 신념보다 ‘함께 보는 즐거움’을 우선한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누구라도 그 아래에서 미소를 머금는다.

날이 춥다는 건 사실 변함이 없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트리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잠시 걸음을 멈춰 빛나는 장식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빛’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흩어지는 LED 불빛들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셈이다. 특히 괜히 마음이 허해지는 12월의 공기 속에서는 그 반짝임이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연말 트리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매년 겨울 사람들의 감정 한 구석을 밝혀주는 작은 등불이다.

나 역시 이런 풍경을 지나칠 수 없다. 내가 사는 곳에도 올해 대형 트리가 설치됐다. 멀리서 봐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환하다. 조만간 가족과 함께 가서 기념사진을 하나 남겨볼 생각이다. 예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지만, 올해는 왠지 놓치기 싫다. 그 불빛 아래 서서 올해의 기억을 한번 모아보고, 다가올 한 해에 대한 작은 기대도 던져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쩌면 이 트리의 힘인지도 모른다.

연말의 트리는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신호다. “수고 많았다”는 말, “새해에도 잘 버텨보자”는 약속, 그리고 “함께여서 고맙다”는 마음.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정교하게 그 위에 쌓인다. 지자체가 설치한 하나의 장식물이지만, 그 공간을 스치는 시민 각자의 마음속에는 서로 다른 의미가 켜진다. 이것이야말로 연말 트리가 가진 철학적 가치가 아닐까. 같은 모양의 트리여도 사람마다 다른 빛을 품게 만든다는 것.

연말이 깊어가는 지금, 혹시 마음 한쪽에 작은 피로가 남아 있다면 가까운 연말 트리 앞에 서보길 권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반짝이는 빛을 바라보면,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쁜 도시 속에서 잠깐 멈춰 설 수 있게 해주는 단 하나의 구조물. 어쩌면 겨울은 이 불빛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수도권지역에 첫눈 소식이 예보돼 있다. 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과 함께 멋진 모습이 연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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