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 110만원보다 따뜻했던 일본인 관광객 손편지

김종대 기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해국제공항 모금함에서 익명의 일본 관광객이 남긴 110만원과 짧은 손편지. “한국 여행 즐거웠습니다. 남은 돈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써 주세요.” 이 문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온기가 되어 마음을 적신다. 떠나는 자리에서 남긴 마지막 친절은 국경을 넘어 도착한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름 없이 건넨 선의는 금액보다 더 긴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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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善(선)’을 본성의 깊은 자리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빛이라고 했다. 누가 보라 해서가 아니라,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발현되는 마음의 움직임. 이 손편지의 힘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남긴 선택. 그래서 그 흔적은 작은 글씨보다 더 크다.

이 기사를 읽으며 젊은 시절 일본 훗사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매결연 도시 방문 차 몇 번 다녀왔는데, 마침 월드컵이 열리던 해였다. 일본 친구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들은 한국과의 경기에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열을 올렸다. 분위기가 거칠어지는 듯해 나는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어느 나라든 자기 나라를 아끼는 마음은 비슷하지만, 일본 친구들의 결은 유독 단단했고 강했다. 그날 나는 국경이라는 선이 사람들 사이를 얼마나 쉽게 갈라놓는지 절감했다.

그런데 요즘은 또 다른 갈등의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총리 발언 이후 중국에서 일본인의 공연이 취소되고, 무대 위에서 조명이 꺼진 채 퇴장당하는 모습까지 보도됐다. 문화와 예술조차 정치적 긴장 속에 흔들리고, 개인의 표현이 국가의 감정에 가려지는 순간들. 개인과 남의 나라 문화가 정치의 그림자 아래에서 움츠러드는 광경은 참 씁쓸하다.

그래서 이번 일본 관광객의 손편지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가 남긴 마음은 국경을 넘어 한 아이의 삶을 향해 다가간 선의였다. 그 순간만큼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한국이라는 나라 사이의 선이 잠시 지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개인이 건넨 작은 친절이, 때로는 국가 간 갈등보다 더 힘 있게 마음을 움직인다. 문득 이런 바람이 일었다. 개인의 갈등도, 사회의 충돌도, 정치의 대립도, 국가 간의 오랜 앙금도… 이 작은 온기 앞에서 조금씩 풀렸으면 좋겠다고.

‘仁(인)’은 둘(二)의 사람(人)이 마주 서는 모습이다. 사람 사이의 틈이 좁혀질 때 비로소 관계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이번 일본인의 행동은 국경이라는 견고한 선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건넨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국가 간의 관계도, 특히 일본과 중국 사이의 깊어진 감정도 언젠가는 이렇게 부드럽게 풀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갈등의 시대일수록 작은 선의가 더 절실한 이유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건 거대한 제스처가 아니라, 110만원보다 따뜻했던 이 마음처럼 조용한 친절이다. 오늘의 온기가 내일의 희망이 되고,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그 바람만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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