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이상하리만큼 전쟁터 같다. 정치도, 사회도, 작은 공동체도 모두 각자 '내가 옳다'는 주장을 한없이 내세운다. 옳음을 향한 열망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고, 누구도 듣지 않으니 결국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작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계속 늦어진다. 목적지(잘되는 마음)는 저 앞에 있는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다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이 때문에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마음의 피로도도 깊어진다. 이런 '옳음의 전쟁'이 조금은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요즘 자꾸 든다.
사람의 마음은 높아질수록 좁아지고, 낮아질수록 넓어진다. 높아진 마음은 다른 의견을 밀어내고, 낮아진 마음은 다름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완고해졌을까. 왜 서로의 말에 이렇게 귀를 닫게 되었을까. 조금만 마음을 내려놓으면 서로의 말이 들릴 텐데 말이다. 최근 개인적인 일로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혼자이다 보니 화려한 식당이나 유명 맛집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자리로 자꾸 발걸음이 향한다. 혼자라 그런지 시끄럽고 붐비는 곳보다 동네 사람들이 편히 드나드는 소박한 작은 식당이 더 끌렸다. 그날도 골목을 따라 들어가 단정한 식당 하나에 앉았다. 혼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말없이 머물러도 괜찮은 그런 공간이었다. 편안한 마음이었다.
식탁에 내가 주문한 갈치조림이 오르기 전, 내 시선은 벽에 걸린 오래된 부채로 갔다. 빛바랜 종이 위에 은근하게 퍼진 묵향, 그리고 그 위에 적힌 글씨. '하심은 곧 부처', 순간 '마음을 내려놓으란 말인가'하고 생각했다. 이윽고 뜻이 궁금해졌다. 어르신은 이 글귀가 사돈 어르신이 직접 붓을 들어 써서 선물한 것이라며 글자 그대로가 뜻이라고 했다. 설명을 듣는 순간, 글씨보다 마음이 먼저 다가갔다. 하심(下心). 마음을 아래에 둔다. 단순하지만 깊은 말이었다. 마음을 낮춘다는 건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라, 고집·분노·아집을 내려놓아 나를 가볍게 만드는 일이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단단해지는 경험을 우리는 종종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할 만큼 자꾸 마음을 높이려 한다.
혼자 먹는 밥은 생각을 유난히 또렷하게 만든다. 조용한 식당 안에서 그 글귀를 바라보는 동안 내 마음속 소음도 한층 잦아들었다. 아집이 한 겹 벗겨지고, 고집이 한 자락 내려앉았다. 마치 갈치 살이 양념 속에서 부드럽게 풀리듯, 마음의 매듭도 스르르 풀렸다. 우리 조상님들은 '고개 숙인 벼가 알찼다'고 했다. 익을수록 낮아지고, 낮아질수록 든든해지는 것이 벼라고 했다. 그 말의 진짜 뜻이 여행 중 작은 식당 그 부채 앞에서야 비로소 되새긴다. 겸손은 억지로 꾸미는 제스처가 아니라, 삶이 익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양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도 제도도 정치도 아니다. 바로 이 하심이다. 서로가 조금만 낮아지면 갈등은 줄고, 마음을 비우면 대화의 문은 열린다. 내려놓는 순간, 길은 다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부채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겸손해지자. 내려놓자. 그게 곧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마음들이 곳곳에서 모여 행복을 만들고 국가의 발전을 앞당기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회가 되며 그 식당을 다시 찾아 칼칼한 갈치조림을 먹으며 하심을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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