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世上萬事] 고향 사람

김종대 기자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김종대(남부권 본부장)

고향 사람이라는 말은 언제나 가슴 한쪽을 따뜻하게 데운다. 오래된 마을길의 먼지 냄새, 겨울 들판의 흙내음, 어린 시절의 말씨까지 따라붙는 단어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하지만, 뿌리라는 건 이상하리만큼 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멀어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고향(故鄕)’은 예로부터 ‘옛 고(故)’와 ‘시골 향(鄕)’을 쓴다. 예전에 머물던 흙, 그 흙에 기대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 의미 하나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고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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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에서 황태국을 먹던 날도 그랬다. 문 닫기 30분 전, 숨을 몰아쉬며 들어선 젊은 손님을 본 주인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강원도 고향 사람 왔는데 밥 줘야지. 어서 앉아요.” 규칙보다 사람이 먼저였고, 장사보다 마음이 앞섰다. 공간 안 공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그 말은 마치 잊고 지냈던 돌담길 하나를 갑자기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 집 황태국은 주인의 마음씨처럼 깊고 담백했다. 황태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 맑게 우러난 국물은 꾸밈이 없어서 더 진했다. 그릇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바람 거친 강원도의 냄새를 닮았고, 한 숟가락을 머금자 오래 묻어둔 그리움이 조용히 깨어났다. 주인은 메뉴에도 없는 생선구이를 건네며 “천천히 많이 드세요”라고 말했다. 음식과 마음, 국물의 맛과 사람의 정이 한 그릇 안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오래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차를 수리하던 날, 보증 기간이 애매해 비용을 낼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비사는 내 고향을 확인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고향 사람이시네. 그냥 보증 처리해드릴게요.”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그 말 한마디도 황태국처럼 맑고 깊었다. 지금까지도 그 인연은 이어져 있다. 돌아보면 삶의 굽이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정(情), 조건 없는 손길이 있었다. 그때마다 뿌리라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도시에 오래 살다 보면 익명 속에 지쳐 이런 온기를 잊을 때가 많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가는 나날이 이어지면, 고향이라는 단어조차 희미해진다. 그런데 누군가 “우리 고향 사람”이라고 부르는 순간, 속 깊은 곳에 묻어둔 흙냄새가 한순간에 피어난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편안함. 같은 산과 같은 바람을 기억하는 사람끼리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고향 사람은 시간의 밖에 있는지도 모른다. 연락이 끊겨도, 자주 보지 않아도, 다시 마주치면 마음 한가운데 있던 문이 조용히 열린다. 제주 황태국 한 그릇, 원주의 정비소 한 켠에서 되살아난 그 이름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히 붙들어준다. 삶이 어디로 흘러가든 돌아갈 뿌리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면 남자들은 유독 고향 한쪽에 작은 집 한 칸 마련해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 아마도 그 속에는, 잃어버린 온기를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는 것이리라. 찬바람이 부는 요즘 제주에서 먹던 담백한 국물이 일품인 황태국을 또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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