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은 작을소(小), 눈 설(雪) 자를 쓴다. 문자 그대로 작은 눈, 즉 겨울의 첫눈이 내리는 시기다. 예부터 이 절기가 되면 하늘은 차츰 낮아지고 바람은 매서워진다. 하얀 눈이 아닌, 눈이 내릴 듯한 공기의 기척만으로도 사람 마음이 덜컥 겨울을 알아챈다. 조상님들은 “소설이 지나면 김장 마쳐라”라 했다. 땅이 얼기 전에 김장을 담가야 하고, 눈이 내리기 전 겨울을 맞을 준비를 마쳐야 했다. 또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피하라”는 속담도 전해진다. 작은 눈이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경고였다.
그 무렵 시골 마을의 풍경은 정직했다. 장독대 옆 장작더미,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부엌의 된장 냄새까지. 세상은 하얗게 변해갔지만, 사람들의 손끝은 늘 분주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한 준비였고, 그것은 생존이자 예술이었다. 눈이 내리면 들판은 순식간에 은빛 세상으로 바뀌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눈 속을 구르고,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이 얼어붙을 만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화로 속 남은 재를 뒤적여 숯을 찾았다. 그리고 그 숯으로 눈사람의 눈썹을 붙였다. 검고 두터운 눈썹. 지금 돌이켜보면 그 눈썹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가장 솔직한 표현이었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재와 눈으로 세상을 만들던 시절.
그때의 눈사람은 요즘처럼 예쁜 장갑이나 목도리를 두르지 않았다. 대신 시커먼 눈썹 하나로 생명력을 가졌다. 그런 단순함 속에 진실이 있었다. 세련됨보다 온기, 완벽함보다 정직함이 중요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커먼 눈썹은 한겨울의 현실을 닮았고, 동시에 따뜻한 사람의 마음을 품었다.
조상들의 지혜는 늘 절기와 함께했다. ‘소설엔 눈이 쌓여야 풍년이 든다’는 말은 겨울의 눈이 봄의 밭을 살린다는 믿음이었다. 눈은 단지 차가운 결정이 아니라, 다음 해의 생명을 품은 약속이었다. 한겨울의 고요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던 마음, 그것이 우리 선조들의 철학이었다.
지금은 첫눈이 와도 카메라부터 든다. 사진 속 눈은 남지만, 마음속 눈은 쌓이지 않는다. 눈을 기다리던 설렘 대신 날씨 앱의 예보를 본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다. 흩날리는 눈송이 하나에 지난 계절의 추억이 실리고, 오래된 순수가 다시 깨어난다.
한자 ‘小’는 양이 적다는 뜻이지만, 마음을 낮춘다는 뜻도 품었다. 작게 내리는 눈을 통해 큰 변화를 알아차리는 법, 그것이 소설의 철학이다. ‘소설이 지나면 얼음이 잡힌다’, ‘닭이 울음을 늦춘다’는 옛말 또한 몸의 시계를 자연에 맞추라는 충고다. 김장과 장작, 우물에 덮개를 얹던 손길처럼, 오늘의 우리는 마음의 저장고를 살피고 따뜻함을 비축해야 한다. 시커먼 눈썹은 흠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하얀 것 위에 남긴 검은 선 하나처럼, 삶은 대비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그러니 올해 첫눈이 오면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고 귀로 눈발의 소리를 들어보자. 작고 여린 기척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겨울 앞에서 다시 겸손해지고, 자연에게 배우는 존재가 된다. 소설은 작은 눈이지만, 그 안에는 큰마음이 담겨 있다. 조용히 내리는 첫눈처럼, 꾸밈없이 세상을 바라보던 그 겨울의 마음을 다시 꺼내어 보고 싶다. 시커먼 눈썹의 눈사람이 미소 짓던 그날처럼, 진심으로 따뜻한 겨울을 맞고 싶다. 우리 삶에 피해 주지 않는 조용히 내리는 첫눈다운 첫눈이 몹시 기다려진다. 절기상 소설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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