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인권/복지

[현장 人] “살아 있는 날까지 봉사하겠다”…82세 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의 멈추지 않는 삶

오기춘 기자
사진 속 우측이 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 (사진제공=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
이병길 단장이 봉사단원과 음식을 나르고 있다. 사진 속 우측이 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 (사진제공=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

[중앙신문=오기춘 기자] “죽는 날까지 봉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여든둘의 나이에도 이병길 분당실버봉사단장은 오늘도 분당 곳곳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른 아침 아내와 1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반찬을 만들고, 거동이 불편한 이웃의 문을 두드려 안부를 묻는 일상은 1974년 성남으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단 하루도 흐트러지지 않은 그의 삶의 리듬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군가 밥 한 끼를 놓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연다.

그의 봉사 철학은 집안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이 단장은 “조부님은 고향에서 대지주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신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조부의 헌신은 곧 집안의 쇠락으로 이어졌고, 어린 시절 그는 종가인 고(故) 이한기 전 국무총리가 살던 집에서 머물며 넉넉지 않은 시절을 버텨야 했다.

그는 “집안이 어려워졌던 시절을 떠올리면, 조부님이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던 것처럼 저도 제 처지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증조부 할머니가 (故) 서재필 박사의 누님이었다고도 전하며, 집안의 깊은 뿌리 속에 흐르는 ‘희생과 공적 정신’이 지금의 봉사 원동력으로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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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본격적인 봉사 여정은 모범택시 기사로 근무하던 시절 시작됐다. 당시 도로에서 교통 봉사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지역과 이웃을 돕는 일에 발을 들였고, 이후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다. “내가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을 때 어려운 이웃을 한 번이라도 더 찾아야지요. 나보다 더 힘든 분들이 있는데 제가 누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봉사가 단순한 선행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이유라는 신념이 담겨 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홀몸노인과 취약가정을 꾸준히 찾아 도시락과 밑반찬을 전달해 왔다. 때로는 사비를 들여 도움을 주었고, 외로운 어르신들에겐 말벗이 되어 마음을 나눴다.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분당의 얼굴”, “의로운 봉사자”라고 부른다. 대가도 명예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람을 향해 살아온 이 단장은 지역 공동체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82세의 나이에도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봉사 현장을 찾는다. 세월이 그의 등을 조금 굽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그 등은 이웃에게는 한없이 믿음직한 기둥이다. 그는 말한다. “남을 돕는 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리가 움직이는 날까지 봉사를 계속할 겁니다.”

그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걸음은 오늘도 분당 곳곳에 따뜻한 온기를 남긴다. 한 사람의 꾸준함이 지역사회에 어떤 울림을 남길 수 있는지, 이병길 단장은 자신의 삶으로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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