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4개월쯤 전이다. 몸이 너무 피곤해 대중교통을 피하고 서울에서 택시를 탔다. 환자 간호로 잠을 못 잔 탓에 목적지까지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기사님께 목적지인 “동두천으로 가 주세요”말하고는,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살며시 감고 있을 때였다. 기사님이 말을 건넨다. “뉴스를 보았는데요, 요즘 동두천시가 미군 부대 때문에 꽤 심각한 가 봅니다”하고 운을 떼며, 기사 내용을 말한다. 말의 내용이 내가 아는 내용이다. 기사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운전하는 택시 기사를 쳐다봤다. 난 동두천 토박이라 동두천에 원만한 택시 기사님 얼굴을 많이 알고 있다. 마치 동두천 택시를 탄듯한 느낌이 들어서 얼굴을 쳐다봤지만 모르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뉴스의 내용은 바로 내가 기자수첩으로 “대한민국 헌법 무시하는 미군 행정, 안보의 그늘에서 시민은 분노한다”라는 제목으로 쓴 기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님은 내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그 기사를 자신의 언어로 풀어 나가고 있기에 기사님에게 눈길이 끌렸다. 동두천 미군 부대의 내용은 기사가 참 많이 나왔고, 많은 신문사가 기사로 담아냈다. 그리고 다른 새로운 내용의 무엇인가가 있나 생각하며, 귀담아듣게 됐다.
한참 말씀을 하시는데 그냥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그 말에 끼어들었다. “제가 그 기사를 쓴 기자예요”하고 말하자 택시 기사님은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참 우연치고 이런 우연도 있네? 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신문사는 중·소 신문사라 한동네를 사는 사람이라도 내가 쓴 기사를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네이버’ 기사 제휴가 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사는 작성자의 손에서 떠나면 더 이상 나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자가 읽고, 이해하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순간 비로소 여론이 된다. 그런데 그 기사님의 말은 단순한 기사 요약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내용에 대한 공감과 해석들이 담겨 있다.
동두천으로 내려오는 동안 서로의 대화에서 ‘우연’이라는 것은 글 속에서만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대화 내내 나의 머릿속에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온통 휘저었다. 동두천까지는 약 한 시간의 거리였고 오는 동안 피곤했던 몸은 대화 속에서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에 갇혔다. ‘올바른 저널리즘’의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기사님 덕분에 오늘 생각이 많아졌네요”
미소 띤 나의 얘기에, 택시기사님 또한 환한 목소리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며 답한다. 차에서 내리는 발걸음은 참으로 가벼웠다. 누군가 내가 쓴 기사를 읽고, 생각하고, 그들의 언어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기레기’라는 말이 새삼 가슴 깊게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 속에서 울림을 만들고, 일상 대화의 한 조각이 되는 것. 그리고 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참된 저널리즘, 그것이야말로 기자가 글을 쓰는 이유이고, 언론이 존재하는 의미라는 것. 좁은 택시 안에서 마주한 ‘우연’은 내게 기사를 쓰는 책임과 기쁨을 동시에 일깨워주었고, 기자의 내 이름은 몰라도 기사의 의미와 내용은 독자들의 마음과 삶 속에서 그들의 술안주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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