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두물머리] 글은 아이큐를 합한 ‘이큐(이해지능)’이다

오기춘 기자
오기춘 기자
오기춘 국장

우리는 글을 ‘지식의 결과물’로 본다. 논리적이고 정확하며, 그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면 좋은 글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글이란 단순히 ‘아이큐(IQ, 지능지수)’의 산물일까? 아니다. 진짜 글은 아이큐를 넘어서 ‘이큐(EQ, 감성지수)’와 만나야 비로소 완성된다. 다시 말해, 글은 ‘아이큐와 이큐를 합한 이해지능’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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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독자의 머리뿐 아니라 마음도 움직인다. 정보만 전달하는 글은 백과사전이나 매뉴얼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고, 사회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작은 일상의 기쁨에 함께 미소 짓게 하는 글은 다르다. 그 글은 사람의 내면을 흔들고, 다시 한 번 세상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만든다. 이건 단순한 지능이 아니다. 이해력, 감성, 공감, 배려가 함께 녹아들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뉴스 기사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읽어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감정을 존중할 수 있는 글이 독자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소설, 시, 에세이 모두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글들이다. 글쓴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자 노력했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내용도 알고 보면, 글쓴이와 글을 번역한 이의 두 사람이 공존하는 감성이 세상 밖으로 잘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원작자의 글의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해지능이 높은 사람은 글을 쓸 때 독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다. 너무 어렵지 않게, 너무 차갑지 않게, 적당한 거리에서 위로하거나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글은 독자의 생각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반대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독자를 무시하거나 감정을 모른 채 쓴 글은 쉽게 외면당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글쓰기는 사람을 이해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감정, 다른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이큐와 이큐를 하나로 엮어 ‘이해지능’을 키운다. 그리고 그 지능이 빛을 발할 때, 우리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공감하는 이야기꾼’이 된다. 글은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이다. 지식보다 이해, 논리보다 공감이 더 필요한 시대가 돼야 한다. 그러므로 기억하자. “글은 아이큐를 합한 이큐, 이해지능이다.” 그것이 우리가 써야 할 글의 시작이다. 때론 누구나 천재성을 나타내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두뇌가 만드는 글을 잘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특별한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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