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조명이 머리 위를 훑고 지나간다. 워킹 라인 위를 걸어가는 모델의 표정은 단단하다. 입가엔 가벼운 미소, 눈빛은 흐트러짐 없다. 미리 자리한 객석의 관객들 눈이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지켜보지만, 그들 안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전투’는 누구도 쉽게 들여다볼 수 없다.
26일 경기북부지역 시니어 모델들이 서울 동대문 DDP 한 창작 패션 스튜디오 복합문화공간에 모였다. 본 무대에서의 런웨이를 앞두고 시니어 신인 모델들의 워킹 리허설이 한창이다.
“고개, 조금 더 들어요. 시선, 정면!”
연출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훈련 중인 모델들의 어깨가 동시에 펴진다. 자세 하나, 눈빛 하나에 몰입하는 모습은 마치 전장에 나선 병사와도 같다.
“모델이 외모만 받쳐준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걷는 순간, 눈빛 하나에도 그 사람의 세계가 들어가야 해요”
20년 경력의 워킹 트레이너 K씨의 말이다. 그녀는 “진짜 모델은 무대 위에서 자기를 내려놓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가장 날카롭게 꺼내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시니어 모델 P씨(65)는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2년 전 시니어 모델로 전향했다.
“쇼가 시작되면 머리가 하얘져요. 하지만 동시에 전율이 느껴져요.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존재가 ‘이 순간’에 닿고 있다는 느낌이요”
하지만 그녀의 이면에는 치열한 자기 검열이 존재한다. 체중 관리, 피부 관리, 경쟁… 때로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죠. 그런데 그럴 때마다 거울 앞에 서요. 눈을 마주쳐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
이 공간엔 나이 지긋한 시니어 모델도, 대학생 모델 지망생도 함께 훈련한다. 모두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이유로 모델이 되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건 같다.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모델 지망생 H씨(58)는 직장을 은퇴한 후 ‘제2의 인생’으로 전문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들이 비웃었죠. ‘무슨 그 나이에 모델이냐’고.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무대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더군요”
화려한 런웨이 뒤에는 끊임없는 연습, 자기 성찰, 때로는 상처와 자신과의 싸움에서 오는 눈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무수한 내면의 시간을 이겨낸 이들이기에, 그들은 더 단단한 눈빛을 무대 위에서 발산한다.
“모델은 결국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입니다” 경기북부 모델협회장 김은엽 씨는 말한다. “무대 위 걸음보다 중요한 건, 무대에 서기까지 걸어온 그 사람의 시간이에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진짜 박수는 무대가 아닌, 매일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내면의 현장’에서 자신과의 싸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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