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

[두물머리] 설날의 유래, 그리고 세시 풍습

오기춘 기자
오기춘 국장
오기춘 국장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로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이며, 당해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로 음력 1월 1일-1월 15일(대보름)까지 명절로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축제일이 시작하는 첫날이다.

광명시청_메인중앙하단_260824
안성시청_바우덕이축제_메인 하단_260908

우리나라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예전 설날에는 의례, 민간신앙,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이 풍성했다. 그리고 새해 첫 날로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에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세시 풍습 정도만이 남아 있어 민속놀이 풍속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날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첫날부터 근신하고 조심케 했다. 그래야 한 해가 무사히 넘어간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설이란 용어는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은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 그래서 설이 지나야 만 한 살을 더 먹었다는 말은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또 설 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 명절이 생겨났다고 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거의 다달이 명절이 만들어져 존재해 왔다. 그중 설날을 보름 명절과 이어지는 새해 첫 날로 여겼기 때문에 명절 기간 동안 가족들과 함께 보내며, 주요 풍습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설날 행해지는 세시 풍속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원의 대상은 신(神)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로 인해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농경 사회였던 세시 풍속은 주요 사업이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를 제일 주요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세시 풍속이 풍농의 기원이 전부 인 것은 풍흉을 점치는 점세(占歲), 농공과 풍농에 대하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어업과도 관련을 갖게 된다. 그리고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농사가 약화되어 농경의례로서의 성격도 희박해졌다. 가장 중요한 의례로는 설날 아침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의식이다. 차례는 집안의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신다. 그리고 차례를 마친 뒤에는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설을 전후하여 마땅한 시간에 성묘를 하고 있다.

정초에 집안의 평안을 위해 안택을 한다. 옛날에는 무당과 같은 전문적인 사제를 불러 평소 집에서 하는 고사보다 규모가 큰 굿을 하는데, 정초에 행하는 신년 제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홍수매기(횡수막이)라 하여 주부가 단골무당을 찾아가 비손을 하거나 또 집에 불러다가 비손 형식의 굿을 한다. 특히 홍수매기는 횟수를 막는 의례로서 가족 가운데 그 해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각별하게 의례를 행한다. 홍수매기를 한 후에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뱃속에 액운이 든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종이와 돈을 넣어 삼거리나 사거리에 버린다. 액운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가 있다.

설을 전후하여 세시 풍속이 다양한 만큼 속신 역시 다양하게 나타났다. 설은 사실상 섣달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음식을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 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이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키가 작은 사람이 남의 집에 출입을 하면 그 해에 목화가 잘 자라지 않는다 하여 금하기도 했다. 복을 끌어들인다는 복조리 풍속도 속신으로 볼 수 있다.

설날 새벽에 밖에 나가 까치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설날 밤에 야광 귀라는 귀신이 와서 신발을 신어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한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대보름에 이런 세시를 행하고 또는 열엿새를 귀신 날이라 하여 이 날 밤에 신발을 감추거나 엎어놓는다. 귀신을 쫓는 방법으로 체나 키를 지붕에 매달아 놓거나 저녁에 고추씨와 목화씨를 태워 독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세시 풍습 중 하나가 정초에 여자들은 널을 뛴다. 널을 뛰면 그 해에 발에 좀(무좀)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연날리기는 섣달그믐 무렵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했으며, 대보름이 되면 액연(厄鳶)이라 하여 연 몸통이나 꼬리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자를 써서 멀리 날려 보냈다. 예전에는 만일 대보름 이후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으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액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로 두 개의 설이 생겼다. 이른바 이중과세(二重過歲)이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은 추석과 함께 전후하여 3일간 연휴이다. 그러나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이 수난의 역사를 나란히 할 만큼 진통을 겪었다고 볼 수 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 이 기준으로는 고종 32년)에 태양력(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 명절마저 억압했다. 그들은 우리 명절 무렵이면 떡방아 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반면에 일본의 명절과 그 행사의 의식(儀式)을 한국에 이식하여 강요하기도 하였다. 가령 일본 명절인 천장 절(天長節)·명치 절(明治節)·기원 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그런가 하면 신정에는 시메나와(표승=標繩)라 하여 새끼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단오절에는 고이노보리(리치=鯉幟)라 하여 헝겊으로 잉어를 만들어 풍선처럼 띄우게 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방식대로 양력과세를 강요했는데, 이는 광복 후 공화국에 들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금했으며 산업화 시대에 와서는 낭비성과 아울러 외국과의 무역통상 관계를 들어 신정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국제적으로 신정이 통용되기 때문에 우리도 그때에 맞추어서 쉬고 ‘구정’ 때에는 외국에서는 모두 일을 하므로 우리 역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무역 수지에 차질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역시 음력 기준의 추석은 휴일로 삼았다는 것은 모순되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의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한국인의 생활 자체가 민속인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은 붙이는 것은 실로 어색하고 궁색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되자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 만에 설날을 되찾았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한때 신정도 3일간 연휴로 하다가 다시 2일로 했으나 1999년 1월 1일부터 하루의 휴일로 축소되어 3일 연휴인 설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 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다행히 근래에는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등 민속과 관련이 있는 기관에서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이를 찾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설 날 가족들이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 떡국을 명절 식으로 하는 세시 풍속이 전승되고 있으니 먹고사는 문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세시 풍습 가운데 미신의 신앙적인 부분에 대하여는 개선됨이 바람직하다고 보겠으나, 세시풍습 놀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최근에 방영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게임 대부분이 우리나라 어린이나 어른들이 즐겨하는 놀이였던 점은 우리 문화의 세시 풍습으로 있던 놀이가 세계의 문화적 영화로 만들어져 남기게 되어 다행스럽다.

수원특례시의회_08 (265x118)
260623_인천도시공사

저작권자 © 중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0개의 댓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